직접 말하지 않는 방식의 사랑

사랑을 말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신 무언가를 고쳐두고, 놓아두고, 기다립니다. 신의 사랑을 그런 형태로 읽는 것이 가능한지 — 이 카드는 그 질문에 대한 것입니다.

주제: 사랑, 고통의 문제, 의심

이 사이트의 다른 카드 하나는 '신의 은폐성'을 반론으로 다룹니다. 신이 있고 관계를 원한다면 왜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가. 이건 진지한 논증이고, 쉽게 반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 사이에서는 이 형태가 낯설지 않습니다. 어떤 부모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새벽에 밥을 해놓고, 고장 난 것을 고쳐두고, 아무 말 없이 학비를 냅니다. 그 사랑을 알아보는 데는 대개 시간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부모가 죽은 뒤에야 알아봅니다.

이걸 신에게 옮기면 논증이 되지는 않습니다. '말하지 않는 사랑도 사랑이다'는 것은 사랑이 실재할 때 성립하는 말이고, 실재하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없는 것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은폐성 논증의 핵심이 정확히 이 지점입니다 — 침묵은 사랑의 증거로도, 부재의 증거로도 똑같이 읽힙니다.

그래서 이 카드는 증명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정리해 둘 수는 있습니다. 만약 신이 있고 그 사랑이 직접적 발화가 아니라 배치된 것들의 형태를 취한다면, 그것을 알아보는 감각은 논증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뒤늦게 알아본 사람들이 그것을 논증으로 알아본 게 아닌 것처럼요.

이 사이트가 이 카드를 반론 카드 옆에 두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둘은 같은 사실을 서로 다르게 읽고 있고, 어느 쪽으로 읽을지는 이 사이트가 정해줄 수 없습니다.

관련 영상

출처

  • 관련 반론은 이 사이트의 '기독교가 가장 답하기 어려운 여덟 가지' 카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