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이론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가톨릭 신부였다
우주가 한 점에서 시작해 팽창했다는 빅뱅 이론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 조르주 르메트르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처음엔 그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주제: 우주·물리, 과학, 회심
조르주 르메트르(1894~1966)는 1차 세계대전에 포병 장교로 참전한 뒤 신학교에 들어가 1923년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그는 물리학과 천문학을 계속 공부한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1927년, 그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풀어 '우주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팽창하고 있다'는 결론을 발표합니다. 당시 학계의 지배적 견해는 우주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을 거꾸로 되짚으면 우주는 하나의 지점 — 그가 '원시 원자(primeval atom)'라 부른 상태 — 에서 시작됐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빅뱅 이론이라 부르는 것의 원형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첫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은 '당신의 계산은 맞지만 물리학은 형편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후 허블의 관측으로 우주 팽창이 확인되면서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1933년 캘리포니아에서 르메트르가 자기 이론을 발표했을 때, 아인슈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고 '내가 들어본 창조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설명'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르메트르 본인의 태도입니다.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와 통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때, 그는 오히려 선을 그었습니다. 자신의 원시 원자 가설은 물리학 모델이며 종교적 창조 교리에서 유도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훗날 교황이 빅뱅을 창조의 과학적 증거처럼 언급하려 할 때도 그는 신중하게 만류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사례가 이 사이트에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과학이냐 신앙이냐'라는 이분법이 실제 과학사에서는 잘 성립하지 않습니다. 현대 우주론의 출발점을 놓은 사람이 사제였고,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신앙을 과학의 결론으로 밀어넣기를 거부했습니다 — 두 영역을 섞지 않으면서 둘 다 붙잡는 방식이 실제로 가능했다는 실물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