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그 주인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 그 유명한 시험 답안의 진실

케임브리지 신학 시험에서 한 학생이 가나의 혼인잔치를 단 한 줄로 답해 최고점을 받았다는 이야기. 그 한 줄은 실제로 존재하는 명문이지만, 시험 이야기 쪽은 근거가 없습니다.

주제: 검증 절차, 난제·반론, 예술

널리 퍼진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 시험에 '요한복음의 가나 혼인잔치 기적을 신학적으로 논하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다들 답안지를 빼곡히 채우는 동안 한 학생만 창밖을 보며 앉아 있다가, 시간이 끝날 무렵 딱 한 줄을 쓰고 나갔습니다 — "물이 그 주인을 보고 얼굴을 붉혔더라." 그리고 그 한 줄로 최고점을 받았다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이 학생이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먼저 좋은 소식. 그 한 줄은 실제로 존재하는 명문입니다. 영국 시인 리처드 크래쇼(1613~1649)의 라틴어 경구시집에 나오는 구절로, 원문은 "Nympha pudica Deum vidit, et erubuit" — 영어로는 흔히 "The conscious water saw its God and blushed"로 옮겨집니다. 물이 자기 창조주를 알아보고 부끄러워 붉어졌다는, 포도주로 변한 순간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간 계산을 해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크래쇼는 1649년에 세상을 떠났고, 바이런은 1788년에 태어났습니다. 바이런이 태어나기 약 140년 전에 이미 그 시구가 활자로 나와 있었던 셈입니다. 즉 바이런이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지어낸 문장일 수가 없습니다.

시험 이야기 자체도 출처를 추적하면 벽에 부딪힙니다. 영어권에서는 같은 이야기가 '이름 모를 어느 학생'을 주인공으로 떠돌고, 학교와 시대가 제각각으로 바뀝니다. 바이런의 전기나 케임브리지 기록 어디에도 이 시험 일화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습니다. 정리하면 — 아름다운 시구는 실재하고, 그 시구를 둘러싼 극적인 무대 장치는 후대에 붙은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합니다.

그럼 왜 이 카드를 굳이 넣었을까요. 이런 종류의 '너무 좋은 이야기'는 신앙 안에서 특히 빨리 퍼지고, 반대편에서는 그것을 '이 사람들은 사실 확인을 안 한다'는 근거로 씁니다. 실제로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가 가짜로 드러나면, 그 옆에 있던 진짜 근거까지 함께 의심받습니다. 그래서 이 사이트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 크래쇼의 시구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굳이 바이런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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