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모든 것이 짚검불처럼 보인다" — 아퀴나스가 펜을 놓은 날

중세 최대의 신학 저작 『신학대전』을 쓰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1273년 어느 날 갑자기 집필을 중단하고, 자기가 쓴 모든 것이 '짚검불' 같다고 말했습니다. 책은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주제: 철학 논증, 성인·성녀, 검증 절차

토마스 아퀴나스는 방대함으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수천 개의 질문과 반론, 재반론으로 구성된 거대한 논증 체계로, 이성으로 신앙을 따져보려는 시도의 정점에 있는 저작입니다.

1273년 12월 6일, 성 니콜라오 축일 미사를 집전하던 중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펜을 들지 않았습니다. 비서이자 오랜 친구였던 레기날드가 계속 쓰기를 간청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 '더 쓸 수 없다. 내가 본 것에 비하면 내가 쓴 모든 것이 짚검불처럼 보인다.' 『신학대전』은 그렇게 3부 중간에서 멈춘 채 미완으로 남았고, 그는 석 달 뒤 리옹 공의회로 향하던 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말을 두고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아퀴나스가 자기 신학을 철회한 것이라는 해석인데, 가톨릭 신학계나 역사가들은 이렇게 보지 않습니다. '틀렸다'가 아니라 '비교가 안 된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정설입니다 — 아무리 잘 지은 건축 도면도 실제 완성된 건물 앞에서는 종이일 뿐이라는 식의 말이죠. 그가 평생 이성을 신뢰했던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이 말은 이성의 포기가 아니라 이성의 한계에 대한 정직한 고백에 더 가깝습니다.

여기서 널리 퍼진 또 하나의 이야기를 정리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퀴나스가 바닷가에서 천사(또는 아이)를 만나 삼위일체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 이야기의 원래 주인공은 아퀴나스가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 삼위일체를 이해하려 애쓰며 해변을 걷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조개껍데기로 바닷물을 퍼서 모래에 판 작은 구덩이에 붓고 있는 아이를 만납니다. '그 작은 구덩이에 바다를 다 담을 수는 없다'고 말해주자, 아이는 '당신의 그 작은 머리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다 담으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답하고 사라집니다.

다만 이 아우구스티누스 이야기 역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중세 전설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본인의 저작에는 나오지 않고, 13세기 야코부스 데 보라기네의 『황금 전설』을 통해 널리 퍼진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상징으로 조개껍데기가 쓰입니다 — 실화가 아니라 상징으로요.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으면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킵니다. 이성으로 끝까지 파고들었던 사람들이 도달한 결론이 '이성은 쓸모없다'가 아니라 '이성으로 담을 수 있는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였다는 것. 아퀴나스의 '짚검불'은 실제 기록이고, 바닷가의 아이는 전설이지만, 둘 다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전설 — 바닷가의 아이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골몰하며 해변을 걷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조개껍데기로 바닷물을 퍼 모래 구덩이에 붓고 있는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 구덩이에 바다를 다 담을 수는 없단다." 아이가 고개를 들고 답했습니다. "당신이 그 머리로 삼위일체를 다 담으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아이는 사라졌습니다. — 13세기 『황금 전설』에 실린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전설로 분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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