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로 논증한 사람, 그리고 성인이 되지 못한 이유

G.K. 체스터턴은 열여섯에 완전한 불가지론자였다고 스스로 적었고, 훗날 C.S. 루이스를 흔든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의 시성 추진은 2019년 반유대주의 문제로 좌초했습니다.

주제: 회심, 철학 논증, 예술, 교회 비판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였고,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브라운 신부의 모델이 된 오코너 신부가 훗날 1922년 그를 가톨릭으로 받아들인 사제였다는 것은 이 이야기의 작은 반전입니다.

회심의 순서를 정확히 봐야 합니다. 그는 『정통(Orthodoxy)』을 1908년, 34세, 아직 성공회 신자일 때 썼습니다. 가톨릭 개종은 14년 뒤인 1922년입니다. 그래서 『정통』은 가톨릭 변증서가 아니라 '사도신경으로 요약되는 중심적 기독교'에 대한 변호이고, 그 때문에 개신교 독자에게도 널리 읽힙니다.

그의 논증 방식은 역설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통 옹호 논리인데, 상대가 자기 것이라 여기는 원리를 가져와 그 원리가 오히려 자기 결론을 지지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 '전통은 모든 계급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계급, 곧 우리 조상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이들의 민주주의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사람이 출생의 우연으로 자격을 박탈당하는 데 반대하고, 전통은 죽음의 우연으로 자격을 박탈당하는 데 반대한다'로 이어집니다.

1925년의 『영원한 인간』은 H.G. 웰스의 『세계사 대계』에 대한 반론서입니다. 웰스가 인간을 '더 발달한 동물'로, 예수를 '그중 좀 더 주목할 만한 하나'로 그린 데 대해, 체스터턴은 인간을 철저히 냉정하게 하나의 동물로만 보아도 기괴하게 이례적인 동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논증합니다. 차이는 정도가 아니라 종류라는 것입니다.

이 책이 C.S. 루이스에게 미친 영향은 루이스 본인이 자서전에 적었습니다 — '그때 나는 체스터턴의 『영원한 인간』을 읽었고, 처음으로 기독교적 역사 개관 전체가 내게 납득이 가는 형태로 제시된 것을 보았다.' 같은 책에 유명한 경고도 있습니다: '건전한 무신론자로 남고 싶은 젊은이는 자기가 읽는 것에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다.' 다만 '체스터턴 한 권으로 루이스가 회심했다'는 서술은 과장입니다 — 루이스 자신이 그 책을 읽고도 '너무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았다'고 썼고, 실제 회심에는 톨킨과의 밤 산책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이제 정직하게 짚어야 할 부분입니다. 그의 시성 추진은 2019년 중단됐습니다. 노샘프턴 교구장 도일 주교가 세 가지 이유를 밝혔는데 — 지역적 공경이 없다, 개인적 영성의 패턴을 끌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시대적 맥락을 감안하더라도 반유대주의 문제는 특히 현시점 영국에서 실질적인 장애다'였습니다.

이 문제는 양쪽 근거가 다 있습니다. 비판 측: 생전 영국 유대인 3대 신문이 모두 그의 반유대주의적 담론을 비판했고, 그는 편집자로서 노골적인 반유대적 기사들을 게재했으며, 1933년 이후에도 유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지했습니다. 변호 측: 그는 유대인이 공격받을 때 물리적으로 방어했고, 1934년 — 많은 지식인이 모호한 태도를 취하던 시점에 —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을 대규모 구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가장 균형 잡힌 정식화는 아마 '그는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으나, 반유대주의에 영향받은 관념들을 신봉했다'일 것입니다.

논증 방식 자체의 한계도 있습니다. 그는 체계적 철학자가 아니라 수사가였고, 역설은 기억에 남지만 논증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리고 『영원한 인간』의 인류학·고고학 논의는 1920년대 학문 수준을 반영해서, 현대 데이터로 그대로 방어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카드를 실은 이유가 있습니다. 체스터턴의 사례는 교회가 자기편 유명인이라고 무조건 성인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반례이기도 합니다. 주교의 거부 서한이 공개되어 있어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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