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 환자들과 살다가 결국 같은 병에 걸려 죽은 신부
벨기에 출신 다미안 신부는 1873년 하와이 몰로카이섬의 나병 환자 격리 정착지에 자원해 들어가 16년을 함께 살다, 자신도 나병에 걸려 그곳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주제: 헌신, 성인·성녀, 고통의 문제
1866년 하와이 정부는 나병(한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몰로카이섬 칼라우파파에 강제 격리 정착지를 만들었습니다. 환자들은 사실상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었고, 최소한의 치안이나 의료도 없이 무법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1873년, 벨기에 출신 신부 다미안(요제프 드 뵈스터)은 이곳에 자원해 들어갔습니다. 처음엔 환자들의 상처에서 나는 냄새에 스스로도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고백했지만, 점차 상처를 직접 소독하고 붕대를 감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민들과 함께 집과 진료소, 학교, 고아원 등 300여 채의 건물을 지었고, 수도관을 놓아 식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16년째 되던 1884년, 그는 자신의 발에서 감각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나병에 걸렸음을 직접 진단했습니다. 치료를 위해 떠날 수 있는 처지였지만 그는 몰로카이를 떠나지 않았고, 이후 병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계속 공동체를 돌보다가 1889년, 49세로 그 섬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이야기는 전 세계로 알려졌고,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됐습니다. 오늘날 그는 한센병·에이즈 환자와 소외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립니다.
다미안의 이야기가 이 사이트의 '고통' 카드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고통이 왜 존재하는지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대신 고통받는 사람 곁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결국 같은 고통을 나눠 짊어졌습니다. '왜'에 대한 답이 아니라 '함께 있겠다'는 응답을, 논리가 아니라 삶으로 보여준 셈입니다.